첫 포스팅 하루, 그리고 또 하루
2014.11.20 14:32
0.
한참을 벼르다가 어떤 사건으로 모든 의욕이 바닥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잊고 있었다. 내가 이놈의 홈페이지를 완전한 블로그 형태로 아주 깔끔하게 바꾸고 싶었다는 것을.
지난주부터, 레이아웃을 바꿔보려고 예전의 스킨을 찾아 이것저것 뚝딱거려봤지만 번번히 실패하면서 또 손을 놨다가, 어제부터 매뉴얼까지 찾아보며 드디어 수정 완료.
1.
그런데 막상 글쓰기 상자를 열고나니 레이아웃 뜯어고칠 때는 춤추듯이 키보드 위를 날라다니던 손가락이 잠시 멈추더라. 쌓여버린 응어리를 치울 엄두가 나지않아 망설여졌다. 지우려고 애썼던 것은 여름이었는데, 글쓰는 법까지 다 잊어버린걸까. 먹먹한 심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급하게 들어온 업무 하나 처리하자마자 다시 돌아왔다. 그래, 뭐라도 쓰자. '언니, 그렇게 속으로만 삼키다보면 곪아버린단말야'라며 걱정하던 D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2.
기억에 남는 D의 조언은 이랬다. '속으로만 삼키지말고 다 토해.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계속 다 말해서 토해버려. 그러다보면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가벼워지는지 느끼게 될거야'
연애 이야기는 속으로 꽁꽁 싸서 숨겨두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조언대로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봤다. 감정이 북받쳐오르면 울먹이면서, 술한잔 기울이며, 진한 치즈케이크를 나눠먹으며, 몇번인가 시도를 해봤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딴일로 연락해온 그자식이 소중했던 내 지난 1년을 기어이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날, 오열하는 내가 걱정되어 달려와준 E와 M에게 횡설수설 이야기를 하고난 후로는 다시 입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상처를 파헤쳐가며 떠들어서 가볍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냥 버리는 것이더라.
그후로 한차례의 울컥은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밤마다 울면서 잠못들던 여름날들이 낯설만큼, 요즘은 퇴근할 때부터 졸리기 시작해서 11시쯤이면 곯아떨어진다. 새벽에 악몽 때문에 깨는 일도 없어졌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건만, 자꾸만 한숨이 나오는건 뭘까. 설마 버리지못한 미련이 절대 찾지 못할 '못찾겠다 꾀꼬리'의 새처럼 숨어서 버티는 걸까. 술래는 자신없는데.
3.
어느새 서울에도 첫눈이 다녀가고 벌써부터 카페에서 캐롤송이 울려퍼지는 11월은 이미 겨울임이 틀림없는데, 마쉬멜로우가 동동 떠다니는 핫초코가 아니라면 커피는 역시 아이스 커피다. 새로 장만한 텀블러에 보터스 커피 가루를 한줌 털어넣고 얼음 4조각과 함께 냉수를 넣어서 모니터 앞에 앉으면 비로소 하루의 업무가 시작되지. 스테인레스에 얼음이 달그락거리도록 휘적대던 빨대로 한입 쭉 들이마시면 뜨거운 식도를 지나 위장을 순식간에 통과해서 혈관을 타고 폭포수처럼 터져나가는 아이스커피의 기류가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 첫모금이 가장 짜릿하다. 요즘은 이재미로 회사를 다닌다.
4.
블로깅을 멈춘 이후로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일어섰을 뿐인데 인대가 나갔고, 퇴근하는데 회사앞 길거리에서 웬 아저씨에게 붙잡혀 삥도 뜯겨봤고, 충동적으로 동해바다로 떠났고, 할로윈데이에는 이태원으로 구경가서 신기한 광경도 많이 봤다. 퇴사충동이 두번쯤 있었지만 참아냈고, 지금은 알바거리를 내가 할까 남에게 미룰까와 만기될 적금액으로 친구회사에 투자를 할까말까로 고민중.
5.
첫 포스팅부터 욕심내지말고 우선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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