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2014.11.23 12:12
얼마전 일이었다.
퇴근하고 버스에 올랐을 때 남은 좌석은 뒤켠의 2인석 어느 한 자리 뿐이어서 쪼르르 달려가 앉았는데 그 자리가 너무도 비좁았다. 옆의 남자가 많이 뚱뚱해서 혼자 1.5인석은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집까지 한시간 넘게 걸리는 버스안에서 감히 나의 이딴 체력으로 서서 갈 수는 없고, 까짓 0.5인석이면 어떠랴 일단 앉아서 가자는 생각에 주저없이 앉았는데... 승객이 꽉 들어찬 버스안에서 창문을 열어도 시원찮을 판에 히터의 열기로 숨이 막혀오자 슬슬 짜증이 났다. 비좁은 자리나 차막힘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버스안이 후끈해면서 그남자로부터 땀냄새와 함께 열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있는 사람들은 손부채를 해가며 더워했지만 겨울철이라 창가에 앉은 사람은 누구도 창문을 열지 않았고, 내옆의 그남자 역시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데도 창문을 열지 않았다. 길이 막혀서 차가 움직이지 않을수록 나는 점점 더 짜증이 났다. 그리고 대체 이남자는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에 대하여 화도 났다. 자기가 2인석 자리에 앉으면 옆사람은 얼마나 불편하게 될지 모르나? 버스 앞쪽의 1인석에 앉았어야지, 왜 2인석에 앉은거야??
이성이 사라지면서 어느새 그남자를 원망까지 하게 될무렵, 누군가 '기사님! 너무 더워요!!'라고 하자 히터소리가 멈췄고, 앞좌석에서 창문을 열어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훅-하고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먼저 히터를 꺼달라하고 앞사람에게 창문을 열어달라 부탁했으면 될 일을, 나는 왜 모든 짜증의 원인을 그남자에게 돌렸던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볼 생각은 못하고 왜 그남자만 탓했던 걸까?? 나도 주변 사람에게 민폐 많이 끼쳐온 장애인이면서, 어째서 그의 덩치를 원망한 거지???
순간,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날의 일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 것은, 종종 같은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같은 건물의 여자가 버스 뒤편에 여유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 가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빈자리를 향해 신나게 달려가 앉았던 나는, 뒤따라온 그녀가 버스 안을 둘러보다가 입을 꾹 다물고 앞쪽좌석으로 자리를 잡고 서는 것을 본 것이다. 그녀가 2인석에 앉아 가는 것을 본 적도 있고, 대충 어디쯤에서 내리는지 알고 있기에, 언젠가부터 앞좌석이 아니라면 서서간다는 걸 깨닫자마자 요전의 그남자가 떠올랐다. 요즘은 원효대교로를 지나 용산으로 가는데만 30분은 족히 넘는다는걸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버스에서 그녀가 자리잡고 서있던 1인석의 승객이 내릴때까지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가끔씩 작은 한숨을 내쉬며 버티다가 겨우 두정거장만 앉고 내렸다. 그날의 나같은 어느 누군가, 그녀에게 기어코 상처를 줬던걸까. 혹은, 나역시 그날,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원망의 눈초리를 담아 그남자를 힐끔거리지는 않았을까. 깊은 반성으로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졌다. 미안합니다.
이젠, 버스타면 그냥 떡실신하듯 잠이나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