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감기 하루, 그리고 또 하루
2014.12.12 14:57
동생은 그게 왜 나때문이냐고 발끈하겠지만, 이번 감기 역시 너때문에 걸린 '더러운 감기'임이 틀림없다.
2년전의 감기는 정말 독했다. 위염+장염+식도염+비염+중이염+편도선염까지 한꺼번에 몰려와서, 아침에 못일어나서 결근하거나 회사에 출근했다가도 다시 퇴근하기 일쑤였고, 회사 변기를 부여잡고 토하다가 아픈게 서러워서 소리죽여 흐느끼기도 했었다. 출근과 동시에 매일 병원으로 갔고, 의사는 여기서 폐렴만 더오면 당신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며 겁을 줬는데, 농담 같지만 진담이었음을 나는 몸으로 알았다. 오래 살기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무슨 암에 걸려서 고생을 바가지로 하다가 죽을 줄로만 알았는데 이딴 감기의 모든 합병증으로 나혼자 죽을똥살똥 고생하며 사람들에게 작별인사 하나 남기지 못하고 이토록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거든. 매일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비틀거리던 나를 불쌍히 여겨준 거래업체의 팀장님이 특별히 배려해주신 덕분에 회사를 다니는둥마는둥 하였고, 악몽같던 한달동안 거의 매일 링거를 맞으며 겨우겨우 버텨서 살아냈던게 바로 2년전의 겨울이었다. (링거 맞으면서도 토해서 바늘이 틀어지고, 그래서 다시 뽑아 다른쪽 팔에 맞는데 또 토하다가 비틀리고.. 어흑.. 그땐 진짜..ㅠ_ㅠ 하지만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지...)
이번의 감기는... 그때랑 똑같은 루트로 얻은 감기라서 덜컥 겁부터 났던거다 동생아! 니 똥 치우다가 걸렸어!!! 발끈!
뭐, 그래도 역시 고생중이지만 그때처럼 죽을 것만 같지는 않다.
위염+장염+식도염의 3단 콤보 때문에, 저녁은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말고 자야한다는 병원 처방으로 어쩔 수 없이 저녁은 굶고 있지만, 엄마가 달여준 약재물을 꾸준히 마시면서 틈틈히 크래커 하나씩은 먹고 힘내는중이다. 팀원들이 바빠서 왔다갔다 하든말든 나는 책상에 엎어져 하루종일 자다가 시간맞춰 퇴근하는데, 그렇다고 일을 전혀 안하는건 아니다. 하필 이 타이밍에 퍼블리싱 업무요청이 들어와서 틀잡고 스크립트 짠걸 결과파일로 넘겨주는 짓까지 다했다. 결과 데이터를 DB서버에 쌓아서 누적시켜야한다던데, 에헤라디야 모르겠다,로 그냥 작업한거 다 넘겨줬다. A4 용지에 사각형 몇개 그려서 '이렇게 생긴 설문조사 페이지 만들어주면 되요'라는데, 군말없이 시키는대로 다 해준게 어디니. 다른 퍼블리셔였으면 일단 밖에 나가서 담배하나 꼬나물고 들어와 '잠깐 얘기좀 하실까요? 혹시 퍼블리셔랑 일 처음 진행해보세요?"라고 따졌을텐데, 나 지금 정말로 너무너무 아파서 말대꾸할 힘조차 없어서 걍 다 해준거다.
기왕 감기에 걸릴거라면, 평일보다 주말에 걸리는 게 더 낫겠다. 그래도 주말에는 하루종일 이불속에서 끙끙대며 잠만 자도 되잖아. 출퇴근 안해도 되고, 머리 안감아도 되고, 퇴근길 버스에서 떡실신한채로 잠들다가 한정거장 더 지나치지 않아도 되고. "괜찮아?"라고 묻는 부장님 상무님 팀장님께 목소리 쥐어짜가며 "아니요"라고 번번히 답하지 않아도 되고..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니까 참는다.. 오늘만 버티면 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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