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19 업무폭풍 하루, 그리고 또 하루
2014.12.19 16:09
엊그제 모닝티 한잔에 감상젖은 일기를 쓰고난 후, 업무로 정신없이 바빴다. 화장실 갈 틈조차 없이 너무 바쁘다보니 나중에는 오히려 막 웃음나며 기분이 좋아지더라. 백수를 천성으로 타고난 내가 절대 워크홀릭일 리가 없으니, 그냥 잠시 해탈해지며 미쳤던 걸지도...?
1.
아침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회사 솔루션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테스트를 하는데,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정상운행 되는지 체크하다보면 보통 한두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빠르면 30분만에 끝나기도 하는데, 뭔가 이슈가 터지고나면 그때부터 일은 복잡하게 돌아가지. 이번주가 내내 그랬다.
2.
해야할 일이 생겼는데, 고객으로부터 원격요청이 들어왔고, 원격 붙어서 원인 파악하려고 별별짓을 다하는데 자꾸 전화응대할 일도 생기고, 그와중에 엔진쪽 개발자로부터 "솔루션에서 화면 틀어지는거 이유가 뭔지 아나요?"라고 물어오길래 원격붙은 pc가 멈춰서 잠시 짬이 생길때마다 후다닥 달려가 해결해주고, 내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소스담당 개발자가 "혹시 html파일안에 담긴 이미지파일이 왜 브라우저에 안뜨는지 알아요? 이것도 해결해봐요"라며 또 업무요청함.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하루종일 소스분석 및 파일수정, 기능추가까지 해야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그래도, 이미지파일이 브라우저에서 확인 안되던 이유가 png파일을 jpg로 강제변환해서였다는 것을 알아내서 알려주고, 새로고침없이 화면을 바꾸면서 input값을 받아오기 위한 js 함수를 투다다닥 만들어내서 넘기고, 개발자가 원하는 기능을 말하면 정확한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계속 질문하다가 코드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주다보니,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해내는 내모습이 팀원들에게는 좀 놀라웠나보다. 입사초반에 유독 나에게만 틱틱거려서 빡치게 만들던 팀원 한명이 예전과 다른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음이 확 느껴질만큼 시선이 달라지더라.
그와중에 원격으로 살펴보던 에러는 생각보다 큰이슈였고, 담당 개발자에게 오류의 패턴을 보여주며 수정을 요청하고 돌아와 거래처에 보낼 문서를 작성하는데, 막내는 아침일찍 넘겼던 업무가 막히자 sos를 쳐오고, 또다른 원격요청이 들어와서 열어보니 새로운 이슈가 뙇... 이 모든게 끊임없이 번갈아가며 몰려올때 아까 내가 "우리 프로그램이 돌기 시작하면, 안랩의 파일 두개를 찾아 반드시 죽여주셔야 합니다"라고 요청했던 작업이, 개발자가 코드수정하면 정상작동 되는지 내가 내 pc로 특정 사이트에서 두개의 파일을 설치후 우리 솔루션이 돌아갈때 다시 삭제가 되는지를 바로바로 테스트하고 보고해야하는 협업작업까지 업무가 쓰나미로 덮쳐왔다. 티비보면서 게임이 안되는 나는 본래부터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해내는 멀티형 인간이 아니였구나,라고 믿어왔는데, 어제 저 업무폭풍을 몸소 체험하며 '역시 나는 뭐든 닥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인간이구나'로 결론을 바꿈.
3.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프리 개발자가 들어왔는데, 이클립스 및 톰캣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생긴 문제를 내가 해결해버린 해프닝도 있었다. 나는 신생아같은 개발자인데 말이다! 자바가 뭔가요, 운영업무만 하던 저더러 갑자기 로그인 화면을 만들고 개발하라니, 뜬금없이 DB연동까지 시키면 어쩌라는 건가요! 하며 급작스런 개발자로 포지션전황에 당황하여 친구들에게 원격까지 부탁하고 여기저기 물어보며 우왕좌왕하던 날이 불과 두어달전인 내가, 그날 이후로는 본래의 업무에 밀려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느라 이클립스라는 프로그램조차 안열어본 내가, 프리랜서로 들어온 개발경력자에게 원인을 알아내주고 해결까지 해주게 되는 날이 오다니.. 스스로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꾸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나저나, 그녀는 프리랜서로 뛸 정도면 분명 경력이 꽤 되는 개발자일텐데,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설치 못해서 하루종일 끙끙대는게 이해가 안갔다. 망할 윈도8.1이 사용자계정명에 별칭을 지어넣게 하는 똘추같은 짓을 해서 오래된 프로그램들이 경로를 못찾고 대책없이 '오류'라고만 뜨며 죽어버리는 증상은 내가 이미 우리 솔루션과의 충돌로 몇번 고생하며 이젠 보기만 해도 '아, 사용자계정명이 불일치하겠구나'하고 알게 될 지경이니까, 그거 때문에 설치가 안되던 문제는 그녀보다 내가 빨리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톰캣 설치할때 포트사용 불가능 에러창이 뜬건... 두시간넘게 프로그램 재설치 같은 삽질을 하던 그녀 대신 내가 30초만에 해결해버리면 안되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나는 구글 검색창에 '이클립스 톰캣 포트 에러'라고 넣자마자 뜬 검색결과에서 보고 알려준게 다거든. 그러니까, 그녀는 명색이 개발자인데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실행 오류창을 보는 몇시간동안 단 한번도 구글링을 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이게 말이 돼?
몇번의 어드바이스로 그녀가 하루종일 끙끙대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문득 그녀보다 그녀를 뽑은 이회사의 안목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여기는 사람을 제대로 뽑을 줄도, 그리고 제대로 쓸 줄도 몰라요"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퇴사한 사회친구 2호의 말이 새삼스레 떠오르는구만.
4.
오늘은 좀 여유롭게 아침 업무를 시작하며 남몰래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엇! 안녕하세요~ 왜 여기 계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때려잡던 몬스터에서 눈을 떼고 그의 얼굴을 확인하여 그가 누군지 깨닫는 순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예전에 같이 팀으로 일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2년전 이맘때 상암동으로 출퇴근할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인데, 심지어 그중 한명은 내동생이랑 소개팅 시켜주려고 퇴사전날 동생의 전화번호를 넘겨줬는데 하도 연락이 오지않아 생각해보니 내가 옛날 번호를 알려주고 떠나버려서, 그걸 몇달후에야 깨달아서 '어머나 과장님, 제가 번호 다시 알려드릴게요!'라며 연락하기엔 애매해져서 전화번호를 지웠던 그사람이더라!
잠깐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그들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고 충격받았던 원인의 핵심은 이거다. 나는 퍼블리셔로서의 직군을 접고 에이전시를 떠나 솔루션회사인 이곳으로 이직했으니, 예전에 같이 일했던 거래처의 사람들을 여기서 업무상으로 다시 마주치게 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는데 오늘 딱 만난거라서. 생각해보면 그때도 금융권과 관련된 프로젝트였고, 우리회사도 주거래처가 금융권이니 얼마든지 교집합이 성립할 수 있었는데 난 왜 그걸 까맣게 잊고 살다가 오늘에서야 깨달았지? 우리 회사랑 협업하려고 업무상 미팅을 왔다더라.
와.. 이바닥이 정말정말 좁구나. 살짝 소름이 돋는다.
5.
이번주내내 정신없이 바빴더니 아파할 틈도 없었고, 아플 겨를이 없자 감기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패턴에 적응되니까 오늘은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블로깅이 가능해졌고, 다 쓰고보니 벌써 오후 4시다. 우후후.. 하는 일 없이 놀다가 퇴근하던 월급도둑 시절이 언제더라. 이번엔 내가 일주일을 회사에 도둑맞았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