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31 앞으로 세시간이면 끝 하루, 그리고 또 하루

# 어제

 

단톡방 친구들과 무한 리필되는 피자를 먹고, '세계 갑부들은 삽질을 하면 어떤 스케일로 하는가'와 '게임에 미치면 이렇게까지 또라이가 될 수 있다'와 같은 시시껄렁한 소재들로 진지하게 떠들고, 자리에 없는 사람들 살짝 씹어주고, 곧 아빠가 된다는 노총각의 고백에 깔깔 웃으며 축하하고. 그렇게 이번 모임은 연말을 술한잔 없이 술자리처럼 잘 놀아봤다.

 

그리하여 무한도전의 달력을 선물로 받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더니,

동생이 저지른 만행을 모두 혼자서 수습해야했던 엄마가 잔뜩 독이 올라 나를 보자마자 소리지르며 하소연을 해왔는데,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아.. 나오늘 놀다가 늦게 들어오길 잘했구나'하고 속으로 몰래 안심했다. 동생이 술에 떡이되어 돌아와 집안을 어떻게 더럽혔는지는 굳이 설명듣지 않아도 눈앞에 그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라서-_-; 그자리에 내가 없었음을 감사하며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엄마에게 웅웅 그래쩌여? 라며 쿨하게 대응할 수가 있었음.

얘는 잊을만하면 다시 겪게 만드는 일이 똥덩어리로 변기막는 거 말고 또하나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술처먹고 온집안에 토하는 거.

 

 

 

 

# 오늘

 

아침일찍 친구들과 카톡으로 인사할때까지만해도 '내일이 쉬는날이라니, 너무 좋아!'라며 내마음은 오전 9시반에 이미 퇴근길로 접어들었건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자 들떴던 기분도 가라앉고 '그러고보니 오늘이 2014년의 마지막 날이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울었던 2014년이 드디어 끝이다. 세월이 아주 많이 지난다해도 올해만큼은 추억조차 하지말자고 다짐했던 나였는데, 막상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서글픔이 꾸역꾸역 차오르네. 점심시간에는 나홀로 사무실에 남아서 둥글게 뭉친 무릎담요를 베개삼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다가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고생했어,라고. 올해의 마지막날 과연 내가 숨을 쉬고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살아있어줘서 다행이다, 라고.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곧장 직행해야지. 내 맘속의 카운트다운은 오늘 퇴근시간이니까, 그후로 영혼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내일 정신차려야지. 제야의 종소리따위는 기다리지 않고 일찍 잠들어버릴테다. 지난 밤에는 떠올리지 말아야 할 생각들로 밤새 괴로워하며 한숨도 못잤지만, 그래서 지금은 기절하고 싶을만큼 피곤하고 졸리니까 오늘밤은 푹 잘 수 있겠지. 올해를 마무리한답시고 지난 일년을 되돌이켜보는 허세도 부리지 않을거야. 그냥 푹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엔 가뿐하게 일어나서 빨래 돌리며 소설책 한권 다읽고 목욕이나 하겠어.

 

오후 세시.
퇴근까지 이제 세시간 남았다.

 

 


+ 퇴근 30분전에 덧붙이자면,

 

부장님께서 6개의 구멍이 뚫린 커피빈 핑크카드를 주셨는데 유효기간은 2014년 12월 31일 오늘까지.

그래서 나는 사무실 구석구석을 찾아가 전직원들에게 "혹시 남는 쿠폰 있으신가요?"라며 앵벌이를 했고, 상무님 자리까지 넘나드는 짓을 한 끝에 경영지원부의 대리님으로부터 모자랐던 6개의 쿠폰을 더 얻어냈으며, 그래서 신나게 1층으로 내려가 쿠폰들을 내고 무료로 아이스 잉블라를 주문해서 마시는중.

나의 이런 모습에 팀원 한명은 계속 '와..대다나다'라는 말을 일곱번쯤 반복하고 있다.

 

나도 내가 대단해요.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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