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책들.. 봄의 정원,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어떤 흔적

몇달 지난거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중에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던 두권을 적어봐야지.

원래 짧게 메모 몇줄만 남기려고 이런짓(?)을 시작한건데, 도저히 짧게 추릴 수가 없어서...


마지막에 살짝 빵터지기를 기대하며~~ 스타트할게ㅋ




* 봄의 정원



- 작고 얇은 사이즈의 책이라 금방 읽겠거니 했다가, 문단 사이마다 한박자씩 쉬면서 책속의 풍경을 상상하고 사색에 빠지느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너무 좋았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기 좋은 잔잔한 소설이라서, 내년 봄이 되면 거실 소파위로 뒹굴거리며 느긋하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 주인공 다로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을 가루내기 위해 사발만한 크기의 절구와 공이를 샀고, 절구통은 빗으로 긁은 듯한 홈이 생겨서 그 틈에 껴버린 유골 가루를 물로 씻어내려니 께름해서 몇년이 지나도록 흰 가루가 남아있다는 글을 읽으며 나는 적잖이 놀랐다. 문화가 달라서인가(일본 소설임) 일반 사람이 유골을 직접 갈 수도 있구나.. 반드시 전문시설을 이용해야만 하는줄 알았는데..



- [노트에 몇문장 옮겨적은 부분 1]


..... 2층 창문으로 널따란 정원의 나무들이 잘 보였다. 해당화가 피고, 느티나무에 잎이 움트고, 수국의 색이 변하고, 목백일홍이 석 달씩이나 꽃을 떨어뜨리고, 금목서가 향기를 발하고, 붉게 단풍이 든 나뭇잎이 지고, 그리고 또 추운 2월에 공기 중에 감도는 향기에 시선을 옮기면 홍매화가 피어 있고 백목련이 커다란 꽃잎을 벌렸다. 해당화와 백목련이 특히 아름다웠다.

그때까지 나무는 도로나 공원, 아니면 먼 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집에 계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와아..계절을 느낄 수 있는 집이라니, 생각도 못해본 낭만적 관점이다!



- [노트에 몇문장 옮겨적은 부분 2]


소파가 잔뜩 있는 방에서 살아보고 싶었다는 다로는 물빛 집의 모리오 가족이 이사가면서 넘겨준 소파들로 작은 로망을 이룬다.


며칠 뒤 모리오 요스케와 그의 직장 부하의 도움을 받아 소파를 집에 들여놓자, 집이 소파로 가득 차 빈 공간이 없다시피 했다. 다로는 집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소파 위에서 보냈다. 오토만에 판자를 올려놓고 테이블 대용으로 삼았다. 코너 소파와 리클라이닝 소파에서 번갈아 잤다. 시트와 등받이 사이에서 몸을 말고 이불을 덮으면 보금자리에 있는 동물 같은 기분이었다.


이 구절이 어찌나 좋던지...>ㅁ< 집안에 소파가 종류별로 꽉 차 있는 느낌은 어떤걸까 상상하노라니, 옛날에 다양한 테이블과 의자로 알차게 꾸며졌던 어느 홍대 카페의 따뜻한 풍경이 떠오르면서 새삼스레 좋더라고.



- 줄거리를 더 섞어서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은데,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글자색을 옅게 해놓을테니까.. '난 안읽을거지만 궁금한데?'하는 사람들만 아래 문단을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읽으시오.. (내가 이렇게 상냥해지다니ㅋ)


등장인물 사씨여자 니시는, 고3 점심시간에 처은 본 '봄의 정원' 사진집을 대학 사진 동아리 부실에서 다시 발견한 후 매일매일 펼쳐보며 사진속의 '물빛 집'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동경했다. 그러다 근처로 이사까지 와서 매일 흘끔거리다 주인공인 다로에게 들키면서 말을 섞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과감한 여자는 결국 그집에 사는 사람과 인연을 만들어서 초대받고, 종종 놀러가서 아무렇지 않은척 집안을 둘러보는 광경이, 그 은근한 관음증이 좀 귀엽다. 그리고 녹색에서 황록색으로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타일로 이루어진 욕실에 들어가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꾸미면서 다로에게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우연인척 물잔을 엎질러달라고 했는데, 뜻밖의 사고로 테이블 위의 유리잔이 잔뜩 깨지는 바람에 유리파편이 팔에 박혀 피가 흐르는 장면에서 이소설은 결정적인 한방을 날린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대신 상처를 씻겠다며 "욕실을 써도 될까요?라고 집주인에게 묻거든. 사고로 피흘리는 와중에도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지에 기가막힌 다로처럼, 나도 기막히면서 동시에 감탄했다.







*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부제: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랄라의 나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보고 읽은 책인데, 딱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었다. 소소한 일상을 섞어서 일기처럼 풀어나가는 글의 구성도 맘에 쏙들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꿈꿔보는 서점주인 로망을 그대로 실현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너무 근사해서 마치 판타지소설 읽는 기분마저 들더라. 현실적으로는 손바닥만한 서점을 개업하고 소신있게 운영해나가는게 불가능하니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않는 일인데, 일본의 오키나와라는 섬은 우리나라 만화동아리에서 자기들끼리 동인지를 발간하듯이 오키나와 지역 자체가 소규모의 출판 문화가 발달한 덕분에 누구나 책을 쓸 수 있어서 아주 다양한 책이 끊임없이 나오고,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에 대한 관심이 높은 환경을 가진 덕에 오히려 주인공인 우다처럼 특별한 주제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서점을 운영하는 게 가능한 특수한 환경을 가졌다. 그래서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이 책의 주인공은 해냈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는 동시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감히 장담하건데, 내 블로그를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반할 것이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몇개 있는데, 노트에 다 옮겨적자니 꽤 길고 귀찮아서.. 문득 '아, 소리내어 읽어서 녹음해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폰의 음성 메모 어플은 열고 시도해봤다. 워낙 충동적이었던 일이라 몇군데 버벅거렸는데, 녹음한거 재생하면서 나 막 허공에 발차기 하고 소리질렀잖아. 미치도록 어색해서 충격받았다. 세상에, 내목소리가 이렇게 뾰족뾰족하다니!! (그래서 조금만 기분좋아 간드러져도 귀여운척 하냐는 오해를 받았구나.. ) 나중에 몇번 반복해서 들으니까 나름대로 익숙해지지긴 했지만, 처음 녹음파일 들었을때는 내방에 혼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창피해서 숨고 싶더라.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난 좀 뻔뻔하잖아?


그래서 여기다 음성파일 세개 올려놓기로 했다!!!



'당신의 지팡이는 무엇인가요'  음성파일 <-클릭하면 확인가능

'알 수 없는 부엉이 사랑' 음성파일 <-클릭하면 확인가능

'멋진 습관 하나 더' 음성파일 <-클릭하면 확인가능



과연 저걸 누가 읽고 듣겠냐만.. (여기는 소리소문없이 인터넷에 은둔하는 블로그)

음성파일 확인하고 손발 오그라들어도.. 나는 책임지지 않을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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