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제법 괜찮았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바다보며 멍때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당황했다고 썼던 날 저녁.
그날도 경비아저씨한테 쫓겨날 때까지 야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데, 친구가 내 블로그를 보고 걱정되어 전화했다면서 "주말에 바다보러 갈래?"라고 너무도 달콤한 제안을 해왔고, 그래서 조금은 갑작스럽지만 지난주 토요일은 을왕리에 다녀왔다.


화사한 옷을 꺼내입고 설레는 맘으로 선글라스까지 준비해서 기다리는데, 집앞으로 데리러온 친구는 "너... 여름옷.. 추울거 같은데..."라며 말을 못 잇다가도 도로위를 달리는 동안 더워하는 나에게 부채를 챙겨주었고, 부채를 살랑거리며 가볍게 입고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막상 바닷가에 도착하자 친구가 건네준 담요를 온몸에 휘감고 나서야 다음부터는 바다갈 때 무조건 외투를 챙겨와야겠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어버렸네..ㅎㅅㅎ

잠시 바닷가로 같이 걸어간 후, 걷기 좋아하는 친구는 저쪽으로 떠나고 나는 근처 벤치에 홀로 앉아 본격적으로 멍때리기 시작했는데.. 하늘에 구름이 많이끼고 흐릿했어도 선글라스를 벗기 어려울만큼 바다는 눈이 부셨다. 저멀리 벌써부터 써핑하는 사람이 보이고, 시야 가득히 갈매기들이 왔다갔다하고.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이 참으로 비현실 같다는 생각이 들자.. 또한번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당황스럽더라. 비현실적이라는 건 바꿔 말하면, 지금의 내 현실이 시궁창이었다는 걸테니까.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30분넘게 멍때리다보니 뭔가 마음이 평온해지는거 있지.
내가 이러려고 어제도 이악물고 야근할 수 있었던 거야. 라던 생각도 스르륵 흘러가고.
겁없이 새우깡을 던졌다가 수십마리의 갈매기들이 달려들자 우아악 하고 소리지르며 도망가는 남자의 모습에 괜히 빵터지고, 작은 삽으로 괜히 모래를 퍼올려 휘날리는 꼬맹이들도 귀엽고. 그러고보니 MT시즌이구나 싶은게, 술 한박스를 옆구리에 낀채 왔다가는 애들 모습도 정겹고, 쓸데없이 날아다니기만 하던 갈매기가 잠시 내려와 걷더니 똥을 싸고 다시 올라가는 모습에 '와.. 얘들은 예의가 있네'라는 생각하며 감탄도 하고.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와닿으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니, 비로소 나도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구나 싶더라. 그리고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을만큼 추워지자 친구에게 대충 카톡을 날린 후, 근처 커피숍으로 향해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는데 그쪽 길가에서 아까 헤어졌던 친구랑 약속도 없이 딱 마주쳐서 또 빵 터졌다.

그러고보면
걷기 좋아하는 녀석과 한군데 오래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여행 성향이 극과 극으로 반대인데도 불구하고 몇번인가 여행을 같이 해봤는데, 각자 같은 곳으로 여행가서 만나거나, 같은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안녕, 잘다녀와.라는 인사를 건네며 서로의 갈 길을 떠나기도 해서 이런게 오히려 더 잘 맞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내 저질체력이 떨어질 때 쯤이면 얘는 졸리다고 들어가자 하는 것도 얼추 맞고..ㅋㅋ

각자의 바닷가 산책과 멍때리기 시간이 끝났으니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별로 배고프지 않다며 카페로 들어가 가볍게 디저트나 즐겨보자던 나는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생선구이정식이 땡기는데?"라며 홀린듯이 식당으로 향했고, 잠깐의 웨이팅 시간동안 근처를 서성이다 전화를 받고 식당으로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놀라웠던게, 어마어마한 양의 생선구이와 조개탕에 입을 떡 벌리며 과연 우리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반이상은 남기겠는걸, 이라던 걱정은 저만치 사라지고.. 나는 거의 3년만에 이토록 많이 먹은 적이 없을만큼 밥까지 싹싹 긁어먹어서 "맨날 소화불량으로 잘 못먹더니.. 너 괜찮아?"라고 친구가 놀라워했잖아ㅎㅎ 식사가 끝나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티라미수 케이크까지 주문하고는 아이스 커피를 꼴깍꼴깍 마시는 내모습에 다시 한번 경악하는 녀석을 보면서 아, 나오늘 원없이 먹어도 속이 편할만큼 정말 행복한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부터 또다른 마법이 시작된 것 같다. 행복하구나, 라는 걸 깨닫게되면 그 순간부터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내 행복을 도와주는 느낌의 마법이랄까.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거말야. ㅎㅎㅎ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최고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창밖을 구경하며 친구랑 수다떠는게 어찌나 좋던지, 화장실을 다녀오던 녀석이 "너 정말 편해보인다. 어쩜 그렇게 의자에 잘 널부러져 있니.."라며 감탄하질않나ㅋㅋ 시간이 흐를수록 태양의 위치가 변하고, 그래서 오른쪽의 바다는 은색으로 반짝거리는데 왼쪽의 바다는 녹색과 푸른색의 중간으로 출렁거리는게 너무도 근사해서, 너무 좋다는 말만 몇번을 반복해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이런 시간을 선물해준 친구가 어찌나 고맙던지..
고마워 정말. 이 날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거야.



그렇게 힐링여행을 다녀온 덕에,
이번주도 월화수목금 내내 야근했지만 정신적인 타격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빡세게 일하는건 예전과 다른게 없지만 기분은 좀 더 좋게, 종종 콧노래도 불러가면서.

뭐.. 기분만 괜찮아진거고 몸은 계속 축나도록 일하는 바람에.. 수욜 아침에는 제대로 일어나질 못해서 결국 병원가서 링거만 또 세시간을 맞고나서야 겨우 출근했지만.. 그리고 약빨로 겨우 기운 되찾아서 그날도 야근해야했지만.. 정신만이라도 좀 나아진게 어디겠어. 하하하하~





통테를 코앞에 두고 매일 전쟁같은 날들을 지내면서, 이번 불금도 회사에서 보냈다.
어제는 어차피 야근하는거. 잠시 얘기좀 하자며 퇴근시간 직전에 잠시 탈주해서 홍책임이랑 맥주한병 깠는데, 아놔 술마시며 일얘기하는거 반칙 아니냐고요ㅜㅜㅋ 어쩐지 맥주 한병만으로는 아쉬워서 나는 한병 더 마실테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권했으나 '안돼요. 사무실 데리고 들어갈거야^-^'라며 기다리길래, 속으로 엄청 꿍시렁거리면서 회사로 복귀해 다시 일하려는데 저쪽에서 팀원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리더라. 그러고보니 벌써 6시반이구나, 저녁이라도 배달시켜줘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슬금슬금 다가가서 뭐먹고싶냐 물어보니까 다들 밥생각 별로 없다고 심드렁하게 답하는게 아닌가. '아.. 불금인데 야근하니까 다들 빡쳤구나'싶어져서 나는 다시 은근하게 "그럼, 맥주 사다줄까? 금요일 야근은 맥주하나 먹어줘야 할만하지!"라고 제안을 바꿨더니..ㅋㅋ 아놔 "맥주는 또 다르죠~"라며 얘들 눈빛이 달라지는거 뭐냐ㅋㅋㅋ 


곧바로 편의점 가서 안주거리와 맥주를 제법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둥그렇게 앉아 다같이 수다타임을 가졌는데, 오늘은 야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조촐한 맥주타임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번 일들 처리하고 조만간 시간나면, 그날은 일찍 퇴근하고 술집가서 제대로 사주겠노라 약속하며 달래주니, 그동안 한숨 푹푹 내쉬던 사람들도 좀 누그러지고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져서.. 아무래도 담주나 다담주는 회식한번 해야할 듯 싶다. (과연 이달안에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ㅜㅜㅋ)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일 얘기만 계속 하다가, 좀아까 홍책임이 술마시며 일얘기하는거 반칙 아니냐며 궁시렁대던 내모습이 떠올라서.. '어머, 맥주 마시자면서 자꾸 일얘기해서 미안해요!'라고 했지만, 이거뭐지 왜 일얘기를 멈출 수가 없지ㅋㅋ

이번 플젝이 끝나면, 반드시 비행기표 끊어놓고 제주도 가서 놀다오겠노라고, 절대 연장따위 안할테니 찾지말라고 하니까 김사원이 "차장님은 프리니까 계약끝나고 떠나시면 정직원인 저희가 남아서 처리해야할텐데, 그때 안부전화 매일 할게요. 저희 버리고 가서 행복하시냐고"라며 계속 까불까불해서 야!!하고 소리지르다 빵터지고, "난.. 아무래도 개발이랑 안맞는거 같아"라는 내말에 권대리가 제일 빵터져서 "아니, 제일 개발자다운 개발자가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을.."하질 않나, 조용히 웃기만하던 임대리는 "멋지기만 하던데요"라며 중얼거리고, 거칠것없는 MZ인 김사원은 "솔직히, 예전 PM은 개발을 1도 몰라서, 일하다 너무 빡세다 싶으면 하기 싫어져서 이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못한다고 뻗대도 통했는데.. 퐁차장님한테는 그런게 전혀 통하질않잖아요. 안된다고 해봤지만, 다 해버리시니까.. 제가 일을 안할 수가 없어요.."라고 투덜투덜.. (하하.. 너어, 이녀석...^-^+)

한시간반쯤의 짤막한 맥주타임을 마치고, 
다시 10시까지 빡세게 일한담에 겨우 퇴근한담에 뻗으니까, 드디어 주말~!!


아아, 매일 토요일이었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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