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가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아아.. 이게 얼마만의 휴가란 말이냐~ 

비록, 오늘의 휴가를 위해 어제는 저녁까지 빡세게 야근해야했지만

어쨌든 알람소리 없이 눈을 뜨고, 시간에 쫓겨서 부랴부랴 세수하는 대신 한시간넘게 침대위를 뒹구는 휴가날의 아침은 참으로 행복하구만. 약간 신기한게, 주말에는 습관처럼 7시면 눈이 떠져서 괜히 하루종일 힘든데 평일의 휴가만큼은 늦잠이 가능해서 더 좋다. 


요즘의 회사일은 음.. 뭐랄까..

여전히 힘들긴 해도 어느새 적응이 된건지 꾸역꾸역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

지난 두달 넘는 시간동안 그토록 고생하며 나 자신을 갈아넣어봤자, 개발자 한명이 아직도 안들어와서 어제는 거래처로부터 까이는 바람에 의욕이 뚝 떨어졌지만(거래처 담당자들과 함께하는 회의에는 플젝 대표로 내가 들어가는거니까 어쩔 수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화면을 붙잡고 이슈를 분석하며 현업의 도움도 받은담에 잠깐의 커피타임으로 숨 좀 돌리다보니 '나도 맷집이 붙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회가 새롭더라. 

매일 힘들어 죽을것 같다면서도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거래처 홍책임 덕분일 것이다. 나랑 같은 학번의 그는 여기서만 무려 16년을 정직원으로 근무했다는데, 긴긴 시간을 지내오면서 플젝의 모든 히스토리를 꿰차고 있는 그 덕분에 나도 숨 좀 돌릴 수 있었거든. 문서 따위 하나 없이도 각각의 담당자들과 긴밀히 연락하고 웬만한 데이터 다 구해오고 '작업하다가 이런 이슈가 나왔는데, 나 혼자 못하겠으니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도움을 요청하면 몇시간내로 뚝딱 피드백을 해주고.. 

와아 진짜, 이런 현업은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만큼 귀한 타입이라 너무 다행이다. 자꾸만 나한테 자기도 프리랜서 하고 싶다며 물어오길래ㅋㅋㅋ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열심히 상담해주다가도 "나 여기, 플젝 끝날때까진 안됩니다? 이직하고 싶어도 상반기는 참아야해요, 약속!" 이러면서 서로 의지하며 일하다보니 어느새 두달이 넘은 것이다. 개발은 할줄도 모르고 생각도 않는 킴과장에게 QA 및 업무 관리를 일부 맡긴 후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초보 개발자들을 일일히 가르쳐가며 일시키는 동시에 이슈 분석하고 정리하느라 너무 정신없고 힘들어서 다 때려치고 싶다가도, 꾸역꾸역 출근해서 일하며 두달이 넘다보니 적응이 얼추 끝났더라구. 


스스로 이런 말하기 우습지만, 나도 진짜 나같은 피엠 밑에서 일하고 싶은게...

기술적인거 물어보면 개념까지 덧붙여 설명해주지, 야근은커녕 할일 다하면 조퇴시켜주지, 매일 사비털어 커피 사주지, 일정 체크하면서 돌아가며 휴가 쓸 수 있도록 챙겨주지. 아니 진짜, 이런 피엠이 어딨냐고요.. 하하~

월욜에는 '다같이 땡땡이 쳐볼까요?'라며 팀원들을 모두 카페로 데려가서 플젝이 지금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주고, 원래 들어오기로 했던 개발자가 끝끝내 오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각자 맡은 파트의 업무보다 조금씩 더 하게 생겼으니 기왕 이렇게 된거, 차라리 이번주에 돌아가며 하루씩 휴가 쓰고 다시 힘내서 조금만 더 분발해보자고 다독거린 담에, 법카는 여유가 좀 있길래 한사람당 3만원씩 커피를 선결제해서 아무때나 맘대로 주문할 수 있도록 해줬다. 시간마다 담배피러 나가던 김사원은 할일 끝날때마다 퇴근해도 된다고 종종 조퇴를 시켜줬더니, 조퇴에 꽂혀서 유독 금욜마다 담배도 참아가며 굉장히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게 아닌가ㅋㅋ 무슨 목적인지 너무 뻔히 보여서 웃기지만 기분좋게 보내줬는데, 다른 팀원들이 질투하는 대신에 '동기부여가 확실히 됩니다'라며 심술부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사원은 일을 빨리 끝내는만큼 업무량은 남들보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거덩. 나는 어쨌든 여기 피엠이니까, 모두에게 똑같은 양의 혜택을 주는게 아니라 누구든지 잘만하면 충분히 보상해주겠다는 기회를 주면서, 조퇴와 휴가를 당근으로 제시하고 플젝 전반의 효율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중인데... 그러다보니 정작 나는 여태 하루밖에 못 쉬었더라구. 왜냐하면 여기서 효율성이 독보적으로 높은 인력이 나니까!!ㅜㅜㅋ 오늘은 마침 엄마의 생일, 무려 칠순이기도 해서, 나도 더이상은 미루지 않고 하루쯤 쉬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퇴근후 작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기로 했으니, 신나게 수다떨며 스트레스 다 떨치고 와야지.


모처럼, 여유롭게 식탁에 앉아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볼륨을 올리려다가

곤히 잠든 하늘이의 낮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져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조용히 집안을 돌아다녔다.


오랜만의 휴가라서 그런가. 이런 평온한 하루가 너무너무 좋구나.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