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캐가 맞긴해. 부정할 수는 없어. 하루, 그리고 또 하루
2022.03.0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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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출근하다보니 사무실을 청소하시는 여사님을 종종 마주치는데,
오늘은 어쩐일로 안떠나시고 핸폰을 든채로 서성이며 전화를 하시더니 통화가 끝나고도 우왕좌왕하시는게 보였다.
무슨일이지, 궁금하긴 했지만 못본척하고 3대의 컴터를 나란히 켜서 키보드를 잡는데, 그녀가 대뜸 내게로 다가와 "어우.. 나지금 정신 하나도 없어. 정신이 없어요."라고 말을 꺼내는게 아닌가. 이건 누가봐도 제발 자기한테 왜그러냐고 물어봐달라는 거잖음? 그래서 나도 무슨일 있으시냐고 정중히 물었지.
"친구가... 남자친구가 죽는대요."
"왜요? 죽을 병에 걸렸대요??"
"아니, 아우 나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럼.. 자살한다는 건가요?"
"네네. 남자친구가 죽겠다고 했대요.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칼같이 내뱉었다. "그런건, 그냥 죽으라고 해요"라고.
(와.. 나새키 싸가지 진짜-ㅁ-;;)
싸가지없는 대꾸를 툭 내뱉고 내스스로도 혀를 내두르긴 했지만, 근데 그렇잖아? 나이를 먹을만큼 먹고도 여자친구에게 걸핏하면 죽을거라며 자살 협박이나 해온 남자는 앞뒤 잴 것도 없이 쓰레기니까. 당신은 언제나 쓰레기통을 거침없이 잘 비워주는 직업을 가졌으면서, 왜 인간 쓰레기는 빨리 치워야한다고 말 못하고 같이 발만 동동 거리는걸까요. 차마 그렇게까지는 입밖으로 말을 꺼내진 못했으나, 리액션을 계속 하다가는 '그런건 그냥 죽으라고 해요' 따위의 말만 터져나올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더니, 여사님은 잠시 주춤하시다가 "내 친구는 진짜 착하고 좋은 앤데.."라고 중얼거리며 사라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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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뜰때부터 전투력 게이지가 만땅이긴 했었다. 정해진 일정은 잘도 흘러가는데 여전히 개발자를 보내주지 않고 감감무소식인 회사와의 사생결단을 더이상 미룰 수는 없었으니까. 본사의 정차장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음.
그 : "안녕하세요~"
나 : "네 안녕하세요.. ...제가 왜 전화했는지 짐작 하시죠?"
그 : "아하하.. 네.. 하하..."
나 : "그럼, 하실 말씀 먼저 해보세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지만, 할말 있으면 먼저 해보라고 선빵을 날리고-ㅅ-ㅋ
자기들도 열심히 사람을 뽑고는 있지만 너무 안뽑혀서 문제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는 그에게 나는 "정차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로서는 기다릴만큼 기다렸습니다. 더이상은 안돼요. 최후통첩입니다. 이번주까지 사람 안보내시면 저도 정리하고 나갈게요. 임원진들과 상의해보시고 어떻게 결론이 나든, 답변은 오늘 내로 주세요."라고 단호히 못박으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곧이어 늘 바빠서 통화가 안되던 전이사로부터 오후에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응, 그래. 여기서 나 그만두면 플젝은 빼박드랍인데 똥줄 타겠지. 얼른 달려오셔야죠?
어느덧 3월로 접어들었고, 곧 봄이 오지 않을까 싶을만큼 강추위는 다 물러났음에도, 내가 지난 두달내내 요구했던 라디에이터는 아주 뒤늦게 전이사의 양손에 들려 오늘에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 싸가지는 집안에 팽개치고 출근했던 나는 고맙다는 인사대신 '겨울 끝났는데요?'라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고, 커피 한잔 사주겠다며 대화 좀 하자는 전이사의 제안에 못이기는척 따라나선후 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했지.
자기들도 손놓고 마냥 기다리는게 아니라 대표까지 나서서 사방팔방으로 사람을 뽑고는 있지만, 출근하기로 약속해놓고 바로 전날밤에 전화로 안오겠다는 거절통보만 여러번이고, 아무리 돈을 주겠다고 해도 사람이 안뽑히니 회사로서도 미치고 팔짝 뛰겠다고. 자기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부디 바라옵건데 이틀밖에 남지 않은 이번주안에 사람 안보내주면 철수하겠다는 가슴 철렁이는 말만 하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나는 영업이사의 읍소따위에 흔들리는 캐릭터가 아니지 :)
"네. 저도 알죠. 요즘 개발자 구하는게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는거. 그치만 생각해보세요 이사님? 개발자를 12월부터 구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벌써 3월입니다. 그 어떤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해도 이해해드릴 수 있는 시기가 이미 지났다구요. 이젠 안됩니다^-^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마세요. 여긴 회사고, 우린 서로 결과만 중요하지 과정은 전혀 상관없다는 거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하루하루가 촉박하다는 얘기만 한달넘게 했습니다. 더는 못기다려요. 다 필요없으니까 개발자나 내놓으세요. 애초에 8멤먼스였던 플젝을 6인까지 줄여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명을 안보내신건, 명백히 계약결렬 사항이에요. 그리고 자꾸 저한테 아는 개발자 있으면 데려오라는 억지 좀 부리지 마세요. 그건 이사님 역할이지, 제 역할이 아닙니다? 심지어 지금의 3인도 거의 초보수준인거 아시죠? 저를 갈아가며 그사람들 하나하나 가르쳐준 덕에 꾸역꾸역 여기까지라도 진행한거에요. 남은 한명을 또 초보로 보내시면 저 진짜 폭발할거니까 이번에는 꼭 중급 이상으로 보내시구요."
전이사가 중간에 자꾸만 "업무 스트레스만으로도 벅차실텐데, 그렇게 사람 구하는거에 대한 스트레스는 제가 가져갈게요. 저한테 주세요" 따위의 헛소리를 늘어놓을때마다 말도 안되는 떼쓰지 말라고 일축한담에 "그럼, 매주 전체회의에 가서 직접 얘기하실래요? 사람 안구해지는 문제는 이분이랑 얘기하시라면서 정중히 미뤄드릴테니까 화욜 아침 9시반마다 여기 와주실래요?" 라고 힐난했더니 대뜸 알겠다며 공수표를 날리게 아닌가. 내가 썩소를 날리며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읊어줬더니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는게 웃겼다. "회의에는 몇명이나 오나요? 네? 열명이 넘어요?? 우리 빼고 거래처 사람들만, 각 팀의 관계자들 다 들어온다구요??? 재택근무하느라 원격회의 하는 사람 다 합치면 스무명이 넘어요???" 라며 점점 겁을 먹고 움츠러들길래 "그러니까, 와봤자 할일도 없는데 괜히 서로 감정만 상하게 참석하겠다고 억지 부리지 마세요"라고 쏘아붙임.
그렇게 30분 넘게 실랑이를 벌인 끝에,
나로서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면 아는 개발자에게 의향을 물어보겠다 했고,
본사는 늦어도 담주까지는 사람을 꽂아넣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내가 사비로 팀원들에게 거의 매일 커피를 사먹여가며 일한다는 것을 듣게된 그는 또 한번 당황하더니 카페 주인에게 부탁해서 선불로 돈을 지급하고 우리가 언제든지 커피를 사먹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아직 싸가지를 챙기지 못한 나는 감사하다는 말대신 '이렇게 제 발목을 잡으시려구요?'라며 깐족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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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엄마차를 타고 이동할때 "난 내가 그동안, 회사 생활은 사람들한테 제법 순둥순둥하게 굴었다고 생각했거든?"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신호대기가 끝나고 좌회전으로 핸들을 돌리던 엄마가 너무 놀래서 켁켁거리고 차가 흔들린 적이 있었다. 엄마의 그런 격렬한 반응에 나도 놀래서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까무러칠 발언이야??"라고 했다가 오히려 역풍맞을 뻔 했는데, 그날 만난 친구들에게 우스갯 소리로 이 얘기를 했더니 얘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뭐? 순둥순둥?? 넌 싸워도 안지잖아???"라고 반응하더라. "아냐, 나도 일할때만큼은 성질 죽이는건데? 그리고 많이 져준단 말이지, 엣헴!"이라며 떳떳해하는 나에게 한친구가 조용히 한방에 정리해줬다. "그래, 넌 일부러 져주는 거지. 엄밀히 말하면 그건, 지는게 아냐"
음... 음... 내가 미처 끝까지 말을 꺼내지 못한게 있다면, 불과 몇년전까지는 나도 내가 참 순둥순둥하다 생각했었는데( ..) 재작년였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더러 쎈캐라느니, 헛소리를 내뱉으며 우겨대는 상대방을 오히려 논리적으로 까버릴때 너무 멋있다고 자기의 멘토가 되어달라는 얘기를 반복해 듣게된 후에야 '아.. 나는.. 생각보다 순둥순둥하지 않구나? 몰랐네...'라고 깨달았다는 게 풀스토리였단 말이지? 근데 그걸 내가 제일 늦게 깨달았나보다.
다들 어쩜 그렇게 빨리 알아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