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여유로운 사무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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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집근처에 다와갈 무렵. 운전하던 엄마가 '원래 반대쪽에서 오는 차도 없고 내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으면, 저런거 무시하고 막 들어가도 되거든. 근데 요즘은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혹시라도 누가 영상 찍어다 신고할까봐 조심하는 중이지!'라며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난 운전을 안해서 그러는건지, 엄마가 뭐라는건지 잘 못알아듣겠어. 그치만 대충 맥락을 짚어보자면 말야.. 보통은 다들 너무 당연하게 지키는 법들을 엄마는 맨날 안지키다가, 어쩌다 한번 지키고나면 그걸 되게 뿌듯해하고 자랑하는 경향이 있더라구? 사실은 지금도 그런거지??"

그러자 엄마가 헤헤헤헤, 하고 웃는데

아놔ㅋㅋㅋㅋ 내가 핵심을 제대로 짚고, 엄마 본인도 딱 들켰구나 싶은가보다. 
그냥 빵터지는게 아니라 빵터지면서도 민망하다는 듯이 헤헤헤헤, 라고 웃는거보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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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해준 얘기인데,
어떤 회사에서 직원의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자, 다른 직원들이 그와 함께 점심먹으려고 줄을 섰단다. 눈을 똥그랗게 뜬 엄마가 왜냐고 물어보자 답하기를, 일단 밀접접촉자가 되면 재택근무는 불가능 한 곳이라 강제로 일주일 휴가를 주기 때문이라고. 회사에서 휴가를 무급으로 처리하면 정부지원금이 나오고 유급휴가여도 횡재인데다가, 어차피 언젠가 겪어야할 역병이라면 차라리 사회에서 지원해주는게 조금이라도 있을때 걸리고 빨리 항체 생겨서, 백신 안맞고도 백신패스 활용할 수 있으니 돈+휴가+백신패스로 1석 3조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젠.. 다같이 조심하는 단계가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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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대리와 정대리를 만나서 신나게 수다 떠는데, 정대리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예전 회사에서 만났던 그녀는 최팀장을 못견디겠다며 우리처럼 퇴사를 결심했지만 다른 팀으로부터 자기네로 오라는 제의를 받고 팀만 옮긴 상태인데, 팀의 절반이 뛰쳐나갈 정도로 관리자 능력이 의심되는 최팀장은 얼마전에 있었던 인사고과에서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최고점을 받고 승진하게 되었다고... 뭐, 뭐라구요?

내가 2년을 근무하는 동안 한번도 만나본적 없지만 그곳의 실장에게는 인사고과에서 단 한사람에게 무조건 최상의 점수를 주고 승진으로 밀어줄 권한이 있는데, 그걸 최팀장에게 썼다는 것이다. 그 소식에 우리는 다같이 도대체 왜, 그딴 사람에게 권한을 남발하는 거냐고 어이없어했지만 사실은 너무 잘 알 것 같다며 씁쓸해하기도 했던게, 승진은 일을 잘하는 사람을 밀어주는게 아니라 맘대로 다루기 쉬운 사람으로 고른다는걸 회사생활 조금만 해도 깨닫기 때문이지...

난 이미 그곳을 탈출한 사람이라 분노하는 대신 씁쓸함으로 대체했지만, 
에라이, 그팀은 제발 빠른 시일내에 망해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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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플젝으로 떠난 김대리는, 출근 3일째 되는 날부터 옆자리의 개발자 때문에 찝찝해졌단다. 
"왜 맨날 점심을 혼자 먹어요? 여기서 나도 프리인데 낼은 나랑 밥 같이 먹으러 가요. 근데 김대리는 20대예요? 아님 30대?? 몇살이에요, 올해 딱 30살? 그럼 나랑 13살 차이네."

고작 3일만에, 툭하면 자리로 찾아와서 남들이 듣든지말든지 저런 식으로 말건다던데, 내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해볼만한데?라고 판단한거네. 다른 사람들 보는데서 그러는건 자기가 침바르는거 티내는거고.."라고 반응하자 옆에 있던 정대리도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 반응에 김대리는 "설마요! 저도 설마설마 하면서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그런건 아니지 않을까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길래 나는 다시 단정지어 말해버림.
"긴가민가한데 기분나쁘면, 그건 기분나쁜게 착각이 아니라 맞아서예요."

이바닥에서 프리로 돌아다닌 회사만 20군데가 넘어가면, 그냥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아 여기.. 또라이는 얘고, 껄떡쇠는 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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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 여유롭다. 출근하자마자 스벅에서 초코케이크와 커피를 사와서 사무실에 앉아 하루의 시작을 달달하게 시작해서 그런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던 강추위가 누그러졌길래 아이스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더니 기분이 좋아진걸까, 아무튼 기분이 좋구나 룰루랄라 노닥거리다가 권대리로부터 업무 도움요청이 와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일 휴일이니까 김사원과 신대리에게 오늘 휴가를 줬는데, 3명의 개발자가 번갈아가며 나를 호출하다가 오늘은 그중에 한명만 남아서였어! 상대적으로 여유롭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니!!


잠시 울컥했다가,
좀전에 급여 들어온거 보고 진정했다. 비밀번호 때문에 은행 가야하는게 귀찮긴 하지만, 얼른 통장정리하고 적금 들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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