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욜의 사무실 풍경 하루, 그리고 또 하루
2022.02.21 22:07
신입딱지는 뗐다고 생각했던 김사원은 애가 탔다. 회사에서 파견보내길래 다른 동네로 오긴 왔는데, 사무실 환경은 너무 열악하고 일정은 빡빡하다고 난리. 처음에 며칠동안은 출근해봤자 개발 환경 세팅하느라 일을 못하니 여유로웠을 것이다. 이런곳에서 몇달 고생할 생각하니 답답해서 계속 담배피러 들락거리고 틈틈히 가이드 문서나 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건너편에 앉은 퐁차장이 눈에 띄면서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바빠죽겠다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던데, 아니 무슨 pm이 저렇게 할 일이 많다는 거지? 예전에 만났던 pm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꼴을 못봤건만, 퐁차장은 누구보다 빨리 출근하고 점심시간에도 일하더니 매일 초주검이 다되어 퇴근하는게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업무파트를 배정받은 김사원은 소스를 까보면서 숨이 막혀왔다. 뭐지 이건. 이런건 해본적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겠는데 이게 다 내 담당업무라고?? 그는 첫번째 에러부터 막혀서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들었고 곧바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퐁차장이 슬며시 그옆에 의자까지 갖다놓고 앉더니 짧은 팔로 모니터를 짚어가며 같이 디버깅을 해주는 게 아닌가. '보통은, 버튼 클릭했을 때 어떤 함수가 호출되는지부터 봐야하지만, 이럴땐 에러문구부터 거꾸로 차근차근 추적해가보죠.'라며 변수를 하나씩 찍어보더니 어디서부터 값이 안들어간건지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사원이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게 퐁차장이 검색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기가 막혔지만, 알려준대로 한단계 진행하면 또다른 에러가 튀어나와서 김사원은 한참을 헤맸는데 언제나 급하게 사무실을 뛰쳐나가며 제일 먼저 퇴근했던 퐁차장이 다음날 아침이면 관련자료 보내주면서 다른 가이드를 제시해주는게 신기했을 것이다. 차장님은 이걸 어떻게 찾았어요?라고 묻기도 전에 "어제도 퇴근하고 집에서 자료찾고 일해버렸어요"라며 징징대던 퐁차장은, 킴과장이 사다주는 커피를 호로록 마시더니 그옆의 신대리에게 찾아가 다른 화면을 디버깅하고, 새로운 이슈를 정리한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또 혼자 3대의 컴퓨터를 번갈아치며 일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퐁차장의 가이드가 없으면 진행이 되질 않으니 김사원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것도 한두번이지, 손톱이 반이상 뜯겨나가고 딱지가 앉기도 전에 또 물어뜯어서 보라색으로 변한 손가락은 이제 더이상 깨물 곳이 없어서 손바닥까지 물게 되었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만 들어서 괴로웠다. 못해내는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고, 교체인력을 요청하자니 지금까지 고생해온게 아까웠던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는 퐁차장의 응원이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짜증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퐁차장이 '오늘 오후까지만 더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다른 방안을 생각해볼게요'라는 마지막 기회를 주었던 날, 김사원은 며칠동안 매달려도 소용없던 마지막 이슈를 드디어 해결했다. "이제 됩니다!"라고 만세를 부르는 김사원을 향해 모든 팀원들이 다같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고, 이런 순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까르르 웃던 퐁차장이 사비로 커피를 사서 돌렸는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키던 김사원이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차장님 없었으면 저혼자서 절대 못했을거에요.'라고 감사인사를 했다.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 전체가 훈훈해졌는데..
감사인사를 들은 퐁차장은 커피에 시선을 돌리며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여러분은 내가 일을 너무 잘한다고 놀라워하는데..
사실은.. 당신들보다 내가 더 나한테 놀라는 중이에요...
나진짜.. 이거 왜 다 해내는 거지?? o_O??